8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는 이 식물원은 타이베이 도심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세속과는 동떨어진 비밀의 정원과 같은 곳입니다. 더욱 흥미롭게도, 이 드넓은 자연 경관 속에 타이베이시에서 고적으로 지정한 100년 된 '석엽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푸르른 초록으로 가득한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924년에 세워진 '석엽관'입니다. '석엽'은 고온에서 말린 잎의 표본을 의미하는데, 이름만으로도 이 오래된 건물의 용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곳은 바로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표본관입니다.
일찍이 대만의 수없이 많은 식물 표본들의 ‘집’이었던 석엽관은 '대만 식물학의 성지'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백 년 전 식물학자들이 식물 수집에 사용했던 도구,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식물 표본,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표본 제작 만화 등을 모두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석엽관을 나서면 주변의 녹음 속에서 두 개의 기념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연못 근처에 위치한 기념비는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대만 연구에 헌신한 식물학자 하야타 분조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동안 대만에서 수집된 3,900여 종의 식물 표본 중 하야타 분조 혼자서 1,700여 종의 명칭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타이와니아(Taiwania)' 표본 역시 그가 명명한 세계 최초의 모식 표본으로, 현재까지도 석엽관의 가장 귀중한 소장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야타 분조는 그의 뛰어난 업적 덕분에 대만에서 '식물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업적 뒤에 숨겨진 조력자가 존재하는데, 그는 바로 하야타 분조 동상 맞은편에 위치한 위르뱅 장 포리(Urbain Jean Faurie)라는 프랑스 신부입니다. 포리 신부는 평생 동안 두 차례 대만을 방문하였으며 첫 번째 방문은 대만 식물학 분류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오랜 투병 끝에 대만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야타 분조가 대만에서 연구할 당시, 포리 신부는 자신이 수집한 만 개 이상의 식물 표본을 모두 그에게 전달하였고 이로 인해 하야타 분조는 대만의 식물학 연구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1924년 설립 이후, 석엽관에는 다수의 식물학자들이 모여 부지런히 표본을 수집하고 정리한 덕분에 50만 개 이상의 표본을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공간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의 표본이 임업소 삼림연구 건물로 이전됨에 따라 석엽관은 본래의 학술적 분위기가 가득한 연구 공간에서 식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박물관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