跳到主要內容區塊

당대의 음악가인 리린추의 고택에 오면 70~80년 전의 생활 분위기와 그 세밀한 모습에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망춘풍(望春風)>에서 <사계홍(四季紅)>, 나아가 <보파망(補破網)>에 이르기까지 리린추의 유명한 가사들은 오늘날에도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기대하고 있네'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연인의 모습부터, '채우고 싶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네'라는 구절 속 절망적인 상황에서 계속해서 버텨야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리린추의 가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정서를 포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리린추 집안은 원래 부유한 곡물상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1923년, 리린추는 대룡동 공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을 포기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팥 전병을 부치고 소상인 및 노동자로 일하다가, 결국 차 상인으로 있던 어머니의 둘째 삼촌인 천톈라이가 운영하는 집 근처의 영악좌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영화 <참회(懺悔)>와 <일개홍단(一個紅蛋)>의 노래 가사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여 점차 시나리오를 쓰는 일까지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1955년에는 영악 영화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의 고택은 이러한 인생의 굴곡을 증명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최초에 이곳은 천톈라이 가족의 차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장소입니다. 이후 한 차례 주택으로 개조되었고, 다시 한 차례 기념관으로 변모하여 현재는 리린추의 친필 원고를 전시하고 음악적 업적을 알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기념관이 위치한 다다오청 지역은 역사와 전통 간식, 그리고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게 줄곧 사랑받아 온 장소로 이 일대의 찻집, 시장, 사원, 예배당 등은 각기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택 근처에 위치한 다다오청 공원에는 리린추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의 작품이 정기적으로 재생되어 방문객들이 소리로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리린추 고택이 추가되면서 다다오청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장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