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T 중산역에서 난징동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 고층 빌딩 숲을 지나면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녹음이 가득한 린썬 공원이 전후에 중화민국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국군 병사들이 거주했던 장소라는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욱이, 그보다 더 이전에는 '싼반차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제강점기 동안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었던 자리라는 점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1919년에 진행된 한 장례식은 이곳이 색다른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8년 러일 전쟁이 종료된 후, 아카시 모토지로는 제7대 대만 총독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일월담 수력발전 프로젝트와 자난 대운하 프로젝트를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1919년, 병에 걸리게 되면서 10월경 고향인 후쿠오카로 돌아가 요양하였으나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전 유언에 따라,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대만으로 돌아와 싼반차오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1919년 11월 4일, 아카시 총독의 관은 주요 도로를 지나 싼반차오의 공동묘지 그리고 그의 묘비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1년 남짓한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대만 각지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살핀 총독을 기리는 의식을 거행한 후 안장되었습니다. 현재의 토리이는 제8대 총독인 덴 겐지로에 의해 1920년에 건립된 것으로, 이 토리이를 지나 묘소로 접근하는 과정이 마치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시간이 흘러 1949년, 국군 육군 제50군의 병사들이 대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정착지를 찾기 위해 이 공동묘지에 직접 권촌을 세우고 심지어 아카시 모토지로의 묘 옆에 공중 화장실까지 설치하였습니다. 이후 1997년 이곳이 린썬 공원으로 개조되면서 비로소 옷을 말리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토리이가 다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현재 린썬북로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시야에 펼쳐지며 크고 작은 토리이가 각각 나란히 위치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큰 토리이는 일제강점기 아카시 모토지로를 위해 세워졌으며, 작은 토리이는 아카시 총독의 비서였던 가마타 마사타케의를 위한 것입니다. 묘의 비석은 과거에 주거용 건물의 건축 재료로 사용되던 것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국사관의 대만 문헌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두 토리이 앞에 서서 천천히 이곳을 지나가면 마치 도시의 중심에서 신과 인간의 접점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