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베이시 반차오구에 위치한 남완화 지역은 신뎬 하천과 다소 거리가 있는 저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자루이자이(gara)'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자루이자이'는 대만 원주민 케타가란족의 언어로 '연못'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지역은 신뎬 하천에서 유입된 지하수가 지면으로 솟구쳐 나와 연못을 형성하는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흔히 '자루이 3대 보물'로 불리는 숙주, 마죽순, 재스민을 재배하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뛰어난 수질을 갖고 있던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당시 정부의 주도 하에 재배하는 작물이 사탕수수와 화훼에서 숙주와 마죽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지금의 창타이가 73항 일대는 전성기 시절 집집마다 물을 길어 숙주를 길렀다고 말할 정도로 꽤 큰 규모의 '숙주 골목'을 형성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낮에 이곳을 방문하면 한쪽에 놓인 커다란 주황색 플라스틱 수통과 대만어에서 대나무(竹)와 발음이 유사한 '德(덕)/tik'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골목길 벽만을 볼 수 있어, 이 지역이 과거 숙주의 주요 산지였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숙주는 빛에 노출될 경우 쓴맛이 발생하고 식감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의 수질이 양호하더라도 숙주 재배자들은 자정이 지난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물을 주거나 수확할 수 있습니다. 수확 후, 작업자들은 숙련된 기술로 숙주를 세척하고 머리와 꼬리를 제거하여 '은아(銀芽)'라 불리는 새하얀 숙주로 가공한 뒤, 이를 상자에 포장하여 인근 청과물 도매 시장으로 출하합니다. 비록 현재 이 지역의 숙주 산업이 과거만큼 번창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타이베이에서 유통되는 숙주의 절반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치에즈면, 양춘면, 심지어 일본식 라면에 사용되는 숙주도 모두 자루이자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불어 숙주 골목에서 창타이가를 따라 바오싱가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쿠자이터우 공원에 위치한 수로 유적과 양성묘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적들은 당시 숙주의 전성기를 보다 생동감 있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른 아침에 씻고 남은 숙주가 물길에 남아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