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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T 공관역 1번 출구로 나와 쉐이위안 시장과 공관 상권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팅저우로 3단 230항 입구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 느껴질 것입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가장 먼저 보이는 공관 주차장과 그 뒤에 펼쳐진 넓은 녹지, 그리고 푸허교 아래의 내지(종합 경기장 및 용푸 공원) 일대는 1950년에 수원지와 총통부에 인접하여 일시적으로 '대만 북부 방어구 사령부'의 주둔지로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눈앞에 보이는 경기장은 총통부 헌병의 주둔지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94년 병영이 점차 해체됨에 따라 보장암 입구에 위치한 병영은 이러한 군사적 기억을 간직한 몇 안 되는 흔적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보장암 촌락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용푸 공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산을 따라 형성된 마을 전체의 경관을 먼저 감상할 것을 추천합니다. 이 산은 공관의 소관음산으로, 강희제 시대에 취안저우에서 이주한 이민자들이 토지를 개척하여 산을 등진 곳에 관음불조를 모시는 관음사를 세운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이후 보장암 관음사는 공관 지역사회의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록 청나라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전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재건되었지만 일부 석조물, 목조물 및 비석은 여전히 과거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음정비'는 청나라 1798년(가경제 3년)에 세워진 것으로 사원 건립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에는 국민당 정부와 함께 많은 군인 가족 및 관리들이 대만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당시 경제적 환경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이민자들은 현지 자재를 활용하여 일부 군인의 단독 기숙사 및 관사 등의 주택을 자력으로 건설하였고, 점차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서 지금의 보장암 촌락이 형성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와서는 보장암 촌락이 홍수 예방 및 물 친화 도시 프로젝트의 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전후 거주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주민들과 지역 사회의 다양한 노력 덕분에 2004년에는 마침내 이곳이 역사적인 건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점차 개방되면서 오늘날 '예술과 주거지의 공존'을 상징하는 '보장암 국제 예술촌'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보장암 촌락에 들어서는 것은 마치 모험의 하이라이트에 도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퉁이를 돌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더해져 탄생한 오래된 집들의 새로운 생명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보장암에서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탐험을 경험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