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상가는 타이베이에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추억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49년 중화민국 정부의 이전과 함께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대만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타이베이의 도시 계획은 대규모 인구 유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중화로의 철길을 따라 세워진 임시 대나무 판잣집에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1959년 장제스 총통은 시찰 중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발견하였고 그의 지시에 따라 중화상가가 설립되었습니다.
북문에서 시작해 소남문까지 이어지는 중화상가는 도로의 경계에 따라 각각 '충(忠), 효(孝), 인(仁), 애(愛), 신(信), 의(義), 화(和), 평(平)'이라는 여덟 가지 전통 덕목의 이름을 가진 건물로 구분됩니다. 줄지어 있는 이 여덟 동의 3층 콘크리트 건물에는 상점과 가정집을 포함하여 총 1,644명의 세입자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상복합 형태를 결합하여 과거의 혼란을 해소하는 방안이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중화상가의 전성기로 평가됩니다. 상가의 서쪽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레저 및 오락 거리로써 영화관들이 밀집해 있는 시먼딩이 위치해 있어 항상 많은 인파로 붐볐습니다. 또한, 상가 준공 몇 년 후에는 인근에 여러 유명 백화점이 잇따라 개장하였고, 그 중 대만 최초의 대형 백화점인 '제일 백화점'이 중화로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청중 시장, 헝양로, 보아이로 등 전통 상권과 함께 주변의 편리한 교통망(다수의 버스 노선이 이 지역을 통과함)이 결합하여 당시 타이베이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 상업 지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타이베이의 상업 중심이 점차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20~30년의 역사를 지닌 중화상가의 영광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타이베이에 지하철이 건설되면서 중화상가는 결국 철거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과거 일자로 늘어서 있던 건물들은 중화로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화로의 육교는 2003년에 재건축되었으며 상부에는 '중화상가(中華商場)'와 '효(孝)'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육교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화로를 바라보면 마치 1970년대 중화상가의 전성기를 다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만약 옛 타이베이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중화상가 효자호 육교를 방문하여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터널 속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