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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리안 지역에서 타석가공과 내화를 거친 치리안석은 18세기 중반 정착민들의 집과 제방을 짓는 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시기에 건설된 타이베이성의 성벽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일제 시기 ‘근대화’ 추진을 보여주는 상징적 건축물인 타이베이 제국 대학(오늘날 대만 대학교)의 교문과 대만 총독부 타이베이 병원(오늘날 대만 대학교 병원)의 담장, 그리고 20세기 중반 철강 대량 생산 및 유리와 도자기를 굽는 데 쓰였던 용광로의 재료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치리안’은 대만 북부 원주민 부족의 언어인 ‘KI-IRIGAN’을 음역한 것으로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들어 있는 ‘만’을 의미합니다. 지형적으로는 단수이강이 굽어지는 돌출형 지대에 속하여 한때 바다에 가라앉았었다가 조산 운동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솟아오른 지역입니다. 강기슭에는 광물이 쌓이거나 부유 생물이 기생하면서 만들어진 겨자색, 코랄색, 은회색, 다갈색의 다양한 치리안석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18세기 중엽, 사(謝)씨 가문은 이곳에 와서 현지 자재로 집을 짓고 농사와 타석에 종사하는 촌락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채석이 금지되면서 타석 산업은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2019년에는 베이터우 스린 과학 기술 단지가 들어서면서 석패연교와 저우메이의 옛 타석 촌락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어 타석 산업도 나날이 사라지면서 2015년에는 ‘암산 신촌’의 치리안석 건축물 또한 철거될 운명에 처했는데, 그때 치리안 문화 스튜디오와 치터우랑(치리안의 ‘치’와 베이터우의 ‘터우’) 팀이 타석 문화를 살리고 기록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치리안 돌담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치리안석 은행’을 설립하여 영구적인 돌의 순환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MRT 치리안역 옆에 있는 '치리안 타석문화 전시벽'에는 돌담이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타석 산업의 역사와 도구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이 곳에서 관련된 내용을 더 깊이 알아보며 치리안석 건축물의 또다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