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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동∙서 비밀 통로_타이베이시 중산구 중산북로 4단 1호
대만에서 춤과 노래가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을 당시, 원산 그랜드 호텔은 매일 밤 가무를 즐길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장제스 총통과 귀빈들의 안전을 위해 호텔은 동쪽과 서쪽에 각각 비밀 통로를 만들어 비상 시에 대피로로 사용하였습니다.
옛 대만민중당 본부_타이베이시 다퉁구 톈수이로 45호
다퉁구의 톈수이로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그중 45호 문패를 달고 있는 곳은 대만인이 결성한 역사상 최초의 정당인 대만민중당의 옛 본부가 있던 곳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미 철거되었지만 이곳에 서있자면 “동포는 단결해야 하고, 단결은 강력한 힘이 있다”는 장웨이수이 선생의 명언을 떠올리게 됩니다.
인하이광 옛 거주지_타이베이시 다안구 원저우가 18항 16농 1-1호
원저우가 18항 16농은 몇 번의 굽이진 길을 돌아야만 도착할 수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작은 골목입니다. 인하이광 선생은 자유주의를 수용한 철학자로 반체제 잡지에 글을 투고하고 교우들과 기존 정당에 반대하는 조직 결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평생 감시를 받아야 했지만 1969년 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글쓰기를 놓지 않았습니다.
자유 골목_타이베이시 쑹산구 민취안동로 3단 106항 3농
대만 민주주의 운동사에서 정난룽의 위치는 대체 불가로, 6미터 폭의 이 골목은 정난룽 선생이 매일 잡지사를 출퇴근하며 지나다닌 길이었습니다. 이곳 11호 3층에는 정난룽 재단이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불타버린 총편집장 집무실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장경 반얀트리/사원_타이베이시 중정구 진장가 34호
진장가 골목 안에는 토지신을 모시는 사원인 복덕야장경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원 뒤편의 오래된 반얀트리(고목 나무)는 둘레가 10미터에 달하고 그 나이는 25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은 역사적으로 “구팅 촌락”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베이터우 어린이 공원_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중산로 2호
매년 겨울이 오면 베이터우는 타이베이 사람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장소가 됩니다. 일찍이 일제 강점기때부터 사람들은 베이터우에서 온천하는 것을 매우 즐겨했으며 지금의 베이터우 어린이 공원은 당시 공중 목욕탕의 부대시설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화흥 광산_타이베이시 신이구 신이로 5단 150항 471농끝
광산이라고 하면 일년 내내 산길과 운반 철도가 안개에 둘러싸인 옛날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외딴 마을이 떠오를 것입니다. 번화한 신이구에 뜻밖에 일제 강점기 말의 화흥 광산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비록 크진 않지만 과거 번성했던 광업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오분상계도_타이베이시 네이후구 캉러가 61항 맞은편
다음에 네이후와 시즈의 교차점을 지날 때, 자연적인 도시 경계선인 네이거우천을 유심히 주목해보세요. 시 정부는 생태공학적 방법으로 네이거우천을 개조하여 생태 환경을 성공적으로 복원시켰습니다. 이 곳에서는 녹음과 곤충,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시냇가에 위치한 문화 경관인 “오분상계도” 역시 방문할 만한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난강 차 제조 시범 센터_타이베이시 난강구 주좡가 2단 336호
다컹천을 분계점으로 한 쪽은 주좡 다른 한쪽은 시즈이며, “주좡”은 청나라 때 차를 재배하는 많은 농민들이 안시 지역에서 이주해 온 곳이기도 합니다. 난강 라오랴오 일대 역시 대만 포종차의 발원지로 구름과 안개가 차밭을 누비며 은은하고 향기로운 내음이 퍼지는 이 곳은 한때 대만의 가장 중요한 차, 광업 그리고 오스만투스(계수나무 꽃)의 주요한 산업 경로였습니다.
타이베이 공연예술 센터 별빛 정원_타이베이시 스린구 젠탄로 1호
타이베이 공연예술 센터는 미국 언론 CNN에서 선정한 올해 가장 혁신적인 건축물이자 영국 언론 <더 가디언>에서 극찬한 올해 최우수 건축물이며, 또한 미국 타임지의 세계에서 꼭 가봐야 할 100대 명소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곳의 전시∙공연 공간 외에도 옥상에 위치한 정원 또한 방문할 만한 가치를 더해줍니다.
국립 정치 대학교 달현 도서관_타이베이시 원산구 완서우로 36호
인스타그램에서 “대만의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검색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곳이 바로 원산구에 위치한 국립 정치 대학교 달현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 들어가 높이 개방된 아트리움에서 올려다보거나, 혹은 꼭대기 층에 올라가 내려다봐도 어디에서든지 7층 전체에 층층이 놓인 책장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니시혼간지 사원_타이베이시 완화구 중화로 1단 174-1호
현재의 니시혼간지 광장은 휴식∙관광 공간으로 일본식 시계탑과 사진을 찍거나 광장 옆에 있는 “린반쇼”(본래 주지스님이 살던 곳)에서 차와 화과자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백여 채의 철제 집과 목조 주택이 뒤섞여 있었으며, 한때 314가구의 사람들이 이 광장에 밀집되어 생활했습니다.
베이터우 하트 빌리지(온천탕까지 이어지는 중심 도로) _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신민로 22항 9호
MRT 신베이터우 역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북적이는 베이터우 온천 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조용하고 푸르른 모습을 간직한 베이터우 하트 빌리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대만 유일의 온천 군의관 부양촌으로 큰길의 끝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이색적인 온천탕이 있습니다.
쉐이처랴오 둘레길 _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주쯔후로 29-1호 옆
벼농사를 지었던 초창기 주쯔후 지역의 쉐이처랴오 둘레길은 원래 청나라 때 지역 주민들이 벼를 따러 지나다니던 옛길이었으며, 이후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농촌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총독부는 이 곳에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새로운 품종의 벼를 심었고 훗날 펑라이 쌀이라고 이름 불리었습니다.
삼각도 나루터 _ 타이베이시 스린구 청더로 4단 2항 145호 제방 바깥쪽
과거 나룻배가 다니던 삼각지 나루터였던 이곳은 마을을 연결하는 교통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계를 위한 배들을 정박해두던 항구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1965년 지룽강 제1차 정비 사업으로 인해 부두의 기능이 점차 축소되며 사라졌지만, 어민들은 여전히 삼각도 나루터라 부르고 있습니다.
마야정사(장다첸 선생 기념관) _ 타이베이시 스린구 즈산로 2단 342항 2호
전통 회화의 대가였던 장다첸 선생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생애 마지막 5년간의 일화를 둘러보세요. 이 공간과 풍경은 모두 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 정부에 기증되어 현재에는 고궁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팔지란 번자정 _ 타이베이시 스린구 중산북로 7단 14항 72-74호
18세기 초 장저우 이민자들이 이 지역에 왔을 때 현재에도 물이 넘쳐 흐르는 오래된 우물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는 곧 그 우물이 300년 이상의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족 사람들은 그 우물이 대만 원주민들에 의해 조성된 우물임을 알고는 당시에 원주민을 지칭하던 용어를 사용하여 “번정(원주민 우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산 신사 유적지(우농 열람실) _ 타이베이시 스린구 위성가 159호
일제 강점기 때의 지산암 신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백이십감” 계단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옛 신사의 터는 현재 중화민국 정보부 창설의 핵심 인물이자 항일 전쟁 당시 장제스 총통의 신임을 받았던 대립(호 우농)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가 세운 “우농 열람실”이 되었습니다.
대정정 예술제 이야기 벽화 _ 타이베이시 중산구 린썬북로 102호 옆
분주한 타이베이 시민대로의 입구를 지나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성된 조통 거리로 들어가 보세요. <화등초상>은 일본 경제가 회복되며 많은 일본 사업가들이 타이베이에 회사를 잇달아 설립하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빛 히카리” 바는 린썬북로 골목에 위치한 슈가 바(Sugar Bar)의 입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검담산(원산수신사) _ 타이베이시 스린구 중산북로 5단 82의 1호 옆
번화한 스린 야시장 바로 옆에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많은 하이킹 애호가들이 찾는 숨겨진 길인 “원산수신사 산책로”입니다. 산책로 입구는 타이베이 수도국 사업차 양명 영업 지부의 주차장에 숨겨져 있으며, 걸어서 5분이면 일제 강점기 때 남겨진 수자원 관리 장비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좀더 걷다 보면 원산수신사에 도착합니다.
대만 기독교 장로교회 따다오청 교회 _ 타이베이시 다퉁구 간저우가 40호
간저우 거리에 위치한 이 교회는 일제 강점기 차 거상이었던 리춘성의 단독 기부로 지어졌습니다. 리춘성은 신앙심이 깊고 부유하며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었기에 교회에 기부할 때에도 당연히 최고의 건축 자재와 제일 아름다운 양식을 사용했습니다. 2002년 5월에는 당시 문화국장이었던 룽잉타이 등이 개입하여 교회가 철거되는 것을 막았으며, 건물을 앞쪽으로 이전하고 복원하는 데에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가화 신촌(오월천 벽) _ 타이베이 중정구 용춘가 131항 1호
번화한 사범대 상권에서 하천 제방을 따라 차들이 즐비한 팅저우 길을 지나면 삼군 종합병원 팅저우 분원 뒷편의 용춘 거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바로 이곳에 “가화신촌”이라는 비밀 장소가 숨겨져 있습니다. 골목의 붉은 문과 벽돌담, 오래된 나무가 인상적인 이곳은 대만 밴드 오월천(Mayday)의 <人生海海 People life, Ocean wild>, 청춘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 2>와 <16개의 여름> 등 많은 영상 작품의 배경지이기도 하며, 그 중 “오월천 벽”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쑨리런 장군 관저 _ 타이베이시 중정구 난창가 1단 136호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식민지 고위 관리의 관저였으며 때로는 외빈을 맞이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전쟁 후에는 육군 총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었고 가장 먼저 입주한 사람이 바로 쑨리런 장군이었습니다. 후에는 총통이 그의 군사권을 박탈하며 타이베이의 관저는 육군 친목회관으로 바뀌었고 1990년대 민주화 이후에 비로소 외부에 공개되었습니다.
르산 (방공호) 공원 _ 타이베이시 완화구 동위안가 65호
공원 안에 들어서면 역사의 축소판에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약 15,903회의 항공기 공습이 있었고, 12만 개에 달하는 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대만 광복 초기, 비행기는 타이베이 과학기술 대학교로 옮겨졌지만 공원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의 성벽 돌담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방공호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공습을 떠올리면 남겨진 역사적 자취들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청운각(QYG Art) _ 타이베이시 완화구 환허남로 2단 5항 6농 20호
청운각은 일제 강점기 윤락가의 랜드마크이자 당시 대만에서 제일 큰 유곽이었습니다. 현재에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활기를 띄고 있으며 아름다운 외관만큼 내부의 건축 디테일 역시 전혀 허술하지 않습니다. 건축팀이 과거의 역사 문화적 사실을 고증하기 위해 여러 건축 부재에 대해 보존과 복원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국립 대만 대학교 캠퍼스 이소 에이키치 오두막 _ 타이베이시 다안구 지룽로 4단 42 항
문발에 “대만 쌀 이야기”라는 여섯 글자가 붙어 있는 작은 목조 오두막은 이 곳을 방문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장 자주 먹는 품종이자 찰기 있고 수확량이 많은 “펑라이 쌀”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소 에이키치 선생과 그의 동료인 스에나가 진 선생은 벼 재배 연구에 몰두하며 이 작은 오두막에서 품종 개량 방법을 자주 논의하였고, 1925년 “펑라이 쌀” 개발에 성공하며 대만 농업의 양상을 바꾸었습니다.
몽골∙티베트 문화관 _ 타이베이시 다안구 칭톈가 8항 3호
장갸 호톡투는 중국 북서부의 칭하이성에서 태어난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4대 생불(生佛) 중 한 사람으로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연이어 발발한 전쟁을 따라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하며 살다가 마침내 타이베이시 남쪽 한 구석에 정착하였습니다. 칭톈가 골목에서 마지막 8년을 보냈고,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유언에 따라 거주하던 곳을 기부하여 현재의 몽골∙티베트 문화관이 탄생하였습니다.
화남 신촌 _ 타이베이시 원산구 신광로 1단 65항 17호
화남 신촌의 가장 큰 특징은 나란히 서 있는 2층 집과 붉은 벽돌로, 이곳은 <양광보조(A Sun)>, <통령소녀(The Teenage Psychic)> 등과 같은 작품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붉은 대문에 햇빛이 내리쬐면 보이는 얼룩덜룩한 흔적은 따듯한 문화적 관용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곳은 대학 직영의 기숙사 중 최초의 “완전한 성 중립”을 구현한 곳으로 “방문”의 장벽을 허물어 화남 신촌만의 새로운 인생 가치관의 장을 열었습니다.
샤오컹천 문학 산책로(샤오컹 백년 토지신) _ 타이베이시 원산구 국립 정치 대학교 1가 210항
샤오컹 백년 복덕궁 옆의 오래된 팽나무는 높이가 8층 건물에 달할 뿐만 아니라 최대 75평에 달하는 나무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고목은 대략 19세기 중반 청나라 도광 황제 시기에 심어져 족히 백년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산책로는 길 양쪽에 많은 시(詩) 문구들이 풍경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샤오컹천 문학 산책로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징메이리 활동 센터 _ 타이베이시 원산구 위잉가 57항 13호
징메이 옛 거리에 들어서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징메이 야시장 주변의 모습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며 그곳의 조용한 분위기에 속도를 늦추고 잠시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곤 모퉁이를 돌아 위잉가 57항으로 가면 주택들의 향수 어린 분위기가 눈길을 끌고, 친절한 마을 이장님이 따듯하게 인사하며 이렇게 말을 건네실 것입니다: “이곳은 예전에 국가에 귀속된 숙사였으나 후에 주민들이 이사하며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된 후, 신청을 통해 현재의 징메이리 활동 센터가 되었습니다.”
시커우 (무지개) 부두 _ 타이베이시 쑹산구 지룽강 청메이 왼쪽 강변공원 (쑹허가 옆 4호 수문으로 진입)
이곳은 200~300년 전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써 무역을 위한 나루터가 갖춰져 있었으며, 삼맹갑으로 불리던 당시 대만의 경제 중심지 완화에 버금갈 정도의 번영을 누렸던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당시의 대만 행정 장관을 맡고 있던 류명전 역시 철도 노선 계획을 통해 이곳에 역을 세웠고, 일본 통치 시기에 들어선 뒤에도 몇 번의 증축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교통과 산업이 변화하면서 하천 운송은 더 이상 주요 교통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나루터 역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쑹산 문화 창의 단지(쑹산 담배 공장 사가 기념비) _ 타이베이시 신이구 광푸남로 133호
쑹산 담배 공장의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인 “쑹산 담배 공장 사가 기념비”는 쑹산 문화 창의 단지 쑹옌 마당의 대만 디자인관 입구 왼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념비에는 1949년에 중화민국 육군 중대장의 신분으로 대만에 온 작사가 하지호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총 73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사가는 당시 대만 경제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떠오르는 산업으로써 생산액이 NTD 210억에 달했던 “쑹산 담배 공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미 고도(쌀을 나르던 옛길) _ 타이베이시 신이구 우싱가 600항 100농
타이베이시 남동쪽 끝에 위치한 우싱 거리는 번화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거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리의 앞쪽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점상들이 영업하는 떠들썩한 시장이지만,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 중간부터 뒤쪽까지의 거리는 작은 마을에 온 것처럼 한적합니다. 약 700미터의 산으로 올라가는 500개의 돌계단은 과거 난강, 무자, 선컹, 징메이 등으로 쌀을 나르던 지름길이었으며 이로 인해 조미 고도(쌀을 나르던 옛길)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후스 기념관 _ 타이베이시 난강구 연구원로 2단 130호
후스는 신문화운동의 창시자이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당신은 학교 교과서 공부를 통해 관대하고도 엄격했던 그의 어머니가 후스 자신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중국어권 세계 사상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생애 마지막 3년을 타이베이의 한 주택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아마 모르실 것입니다.
신복 본갱 _ 타이베이시 네이후구 다후가 131항
100년의 광산 역사를 간직한 신복 본갱의 재건된 운반 철도와 선로는 당신에게 작은 탐험을 떠난 듯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열심히 채굴하는 한 명의 광부가 되는 듯한 상상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대만의 많은 광산과 마찬가지로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산 재해로 인해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타이베이는 밝고 현대적인 인상을 주고 있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 이와 같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선인들의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톈쉐이 원앙 호수 _ 타이베이시 네이후구 비산로 44항
네이후구 대륜두산에 위치한 톈쉐이 원앙 호수의 푸르고 풍부한 물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곳이 잡초가 가득한 진흙투성이의 건조한 비당(연못)이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시정부는 2008년 2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시작해 환경 정화 외에도 기존에 사용하던 비교적 간단하지만 생태계에 이롭지 않은 시멘트 사용을 거부하고, 대신에 방수가 뛰어나며 환경 친화적인 토목합성수지 점토라이너를 사용하여 호수 바닥을 복원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복원된 현재의 비당은 운치 있고 비밀스러운 장소로 변모했습니다.
치리안 타석문화 전시벽 _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둥화가 2단 380호 앞(MRT 치리안역 2번 출구 근처)
치리안 지역에서 타석가공과 내화를 거친 치리안석은 청나라부터 일제 시기까지 건축 자재로 자주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련과 유리 및 도자기 산업에서 쓰이는 용광로의 재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채취가 금지되면서 타석 산업은 점차 쇠퇴했습니다. MRT 치리안역 옆에 있는 '치리안 타석문화 전시벽'에는 돌담이 보존되어 있음과 동시에 타석 산업의 역사와 도구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초산 수로(사파이어 샘물) _ 타이베이시 스린구 아이푸3가 12항 톈무 옛길 입구로 진입
1932년에 완공되어 개통한 상수도 시스템 '초산 수로'는 타이베이의 두 번째 상수원이 되었습니다. '용천대' 안에 있는 사파이어 샘물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안산암을 통해 자연적으로 여과될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은 안산암 돌집과 어우러져 사파이어와 같은 광택을 내는 아름다운 샘물입니다.
옛 쌍계하천 산책로(오분항계) _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청더로 7단 109항 500호 분양충무왕성궁 옆 /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허메이가 271호 저우메이 스포츠 공원 베이터우 소각장 수영장 옆
오분항계는 과거 쌍계천의 하류에 있던 곳으로, 지룽강에서 갈라져 나오며 모래밭이자 비옥한 땅이 형성되어 타이베이에서 보기 드문 넓은 논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타이베이시 가장 아름다운 하천 문화 진흥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지역의 청결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밖에 가장 아름다운 하천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가이드 투어와 체험 학습 및 홍보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두 자연 공원 _ 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관두로 55호
관두 자연 공원은 단수이강과 지룽강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 습지 생태 자연 보호 구역으로 철새와 토착 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국제적인 관심과 인정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2006년부터는 이 곳에서 '관두 국제 자연 예술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페스티벌은 자연 보존에 중점을 두고 국제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자연적 소재를 이용한 야외 설치 예술 작품을 선보이며 사람과 예술, 자연 간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대만 신문화운동 기념관(선형 유치장 및 수옥) _ 타이베이시 다퉁구 닝샤로 87호
대만 신문화운동 기념관은 일제 시기에 완공된 2세대‘타이베이 북부 경찰서’입니다. 경찰서 내부에는 불량배, 도둑, 무직자, 불법 아편 중독자, 도박꾼, 정치범 등을 단속 및 고문하기 위한 유치장과 수옥이 있습니다.
타이베이 인형극 예술 센터(수장고) _ 타이베이시 쑹산구 시민대로 5단 99호 2층
타이베이 인형극 예술 센터는 타이베이에서 수장고, 전시장, 극장을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장소 중 한 곳입니다. 대만 전통 문화 예술 재단의 린징푸 박사가 수십 년간 수집한 인형을 기증하기로 결정한 덕분에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오랜 기간 학교와 협력하여 소장품 전시 및 공연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MRT 쑹산역(굽어진 강, 활짝 핀 꽃, 빛의 돔) _ 타이베이시 쑹산구 바더로 4단 742호
MRT 쑹산역 지하 1층 넓은 홀의 천장에는 <굽어진 강, 활짝 핀 꽃, 빛의 돔> 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가 장양휘는 이 작품을 통해 쑹산의 풍부한 문화 경관을 보여주고자 5만 개가 넘는 LED 램프를 사용해 수직으로 들쭉날쭉 물결치는 지형과 옛 강의 굽어진 물길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크리스털 유리를 사용하여 거대한 빛의 조각을 만들어 무성한 꽃의 이미지를 전달하며 생명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성 잡지사(한성항) _ 타이베이시 쑹산구 바더로 4단 72항 16농 1호 1층
시민대로 옆 바더로 골목길에 위치한 서점 '한성항'의 입구에는 '한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붓이 세워져 있으며, 이는 조롱박 모양의 특이한 자동문 안에서 판매하는 것이 바로 ‘문화’ 처방전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성 출판사는 더 이상 신간을 출간하지 않지만 서점에 진열된 책과 잡지는 우리에게 과거 대만 지식인들이 노력해온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네이후 곽씨 고택 _ 타이베이시 네이후구 원더로 267항 19호
네이후의 붉은 저택으로 알려져 있는 민남식 서양 가옥인 ‘네이후 곽씨 고택’은 대만 전통 가옥 형태인 '본채 한 칸과 곁채 두 칸'의 구조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2층에는 서양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돌출된 아치형 발코니가 있습니다. 흰색 돌의 중앙에 박혀 있는 정사각형의 무늬 타일은 고택이 지어진 1920년대에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당시 일반 주택과 사원의 건축 자재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쌍길용(큰 행운을 가져다주는 반얀트리) _ 타이베이시 중정구 샤먼가 113항
샤먼가 113항과 퉁안가의 교차로에 조용히 우뚝 서 있는 고목 '쌍길용'은 주변 출판사 및 서점들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문인들의 삶을 지켜봐 왔습니다. 무한한 문학의 나무처럼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이 반얀트리 역시 무수한 이야기와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타이베이 수도 박물관 공원 (소관음산) 저수지 지하 궁전 _ 타이베이시 중정구 쓰위안가 1호
열악한 위생 환경으로 인해 일본군의 질병 감염이 계속되자 당시 대만 총독부의 위생 고문이었던 고토 신페이는 스코틀랜드의 엔지니어링 기술자인 윌리엄 벌튼과 그의 제자 하마노 야시로를 초청하여 대만 전역을 조사한 뒤, 도시 계획을 기획하고 수로 시설의 건설 위치를 물색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오늘날의 수도 박물관 공원 부지를 선정하고, 공관 관음산 높은 곳에 약 15만 명에게 공급 가능한 수량의 대형 저수지를 건설하여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과거 타이베이성 내부 지역으로 물이 유입되도록 했습니다.
제2 우리쉐천 지류 유적 _ 타이베이시 다안구 원저우가 45항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개천을 꼽자면 바로 우리쉐천일 것입니다. 우리쉐천은 공관을 지나 원저우가 부근까지 이어지며 지우벤터우에서 아홉 개의 줄기로 갈라져 흐릅니다. 그 중 세 갈래가 주요 물줄기이며, 오늘날 원저우가 45항에 위치한 곳이 바로 제2 우리쉐 물줄기입니다. 현존하는 야외 수로는 짧은 구간만이 남아있으며, 그 부근은 지역 이장의 노력으로 주민들이 함께 가꿀 수 있는 대학 텃밭이 되었습니다.
대만 전력 공사 마늘 배나무 _ 타이베이시 다안구 루즈벨트로 3단 283항 30호
1970년대 당시 대만 전력 공사의 직원이었던 천원왕은 제자인 천린진에게 나뭇가지를 선물하며 대만 전력 공사 건설의 성공을 위해 함께 인도보리수를 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실수로 마늘 배나무를 심게 되었고 그대로 15년간 정성 들여 돌본 끝에 꽃까지 피워 냈습니다. 그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인근 대만 대학교 학생들이 이곳을 지나가다 연구를 위해 꽃가지를 주워 갔고, 그제서야 오랫동안 인도보리수라고 여겼던 나무가 사실은 오세아니아에서 온 마늘 배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총독부 산림과 기숙사——0km 마운틴 스토어 _ 타이베이시 다안구 진산남로 2단 203항 21호
1930년대에 대만 총독부 산림과는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직원 복지 단체인 ‘영림공제조합’을 설립하게 되었고, 이어 직원들이 거주할 수 있는 기숙사를 매입하였습니다. 그후 2006년 민간 차원의 노력으로 이곳은 타이베이 시정부에 의해 고적 및 역사적 건축물로 지정되었고, 10년이 넘는 조사와 연구, 복원 작업을 거친 끝에 옛 모습을 되찾으며 오늘날 대중들에게 그 풍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산루(풍수목 풍향수)_타이베이시 베이터우구 양밍로 2단 15호
중산루 어귀의 패루 앞에 위치한 청촌국건관 정원 안뜰에는 풍수목으로 알려진 '풍향수'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 이 나무를 기준으로 건물의 위치가 정해졌다고 하여 '풍수목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중산루가 왔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왕의 축'이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 전설은 중산루의 신비로운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샤오베이가 22항_타이베이시 스린구 샤오베이가 22항
샤오베이가 22항은 스린 로터리 샤오베이가 입구에 있는 ‘더푸 병원' 뒤편의 '집을 가로지르는 골목'을 지칭합니다. 과거에는 이곳에 집들이 나란히 붙어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집 아래에서 이어지는 독특한 형태의 골목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2022년에 진행된
암산 신촌_타이베이시 스린구 즈위로 1단 79항 2호
최초에 암산 신촌은 권촌(과거 군인, 경찰, 공무원 및 그 가족을 위해 조성된 마을)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민들이 부대를 따라 이주한 후 스스로 정착하여 거주지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후 군사 정보국에 공식적으로 소속되어 관리되었습니다. 암산 신촌의 건물들은 시대에 따라 필요에 맞게 지속적으로 지어졌으며, 이는 특정 민족의 역사적 발전과 기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화훼 실험센터_타이베이시 스린구 양더대로 4단 175항 32호
스린구에 위치한 화훼 실험센터는 원래 과수 재배를 위한 '양명산 감귤 시범 농장'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기후가 꽃모종 및 다른 종의 나무를 재배하는 데 더 적합해 이후 동백꽃, 진달래 등 화훼를 재배하고 수집하는 장소로 변화하였습니다. 현재 이곳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식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좡자이못_타이베이시 난강구 쿤양가 171항 1호
청나라와 일본 통치 기간 동안 신좡자이못은 동신좡자이 지역 내의 많은 마을을 먹여 살렸지만 도시 개발과 경제 구조의 변화로 인해 규모가 축소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정부에 의해 공원 부지로 지정되어 조류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조류 관찰의 천국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둔화 야외 아트 갤러리_타이베이시 둔화남북로 중앙 분기점 및 교통섬 일대(민취안동로부터 지룽로까지)
1999년, 타이베이시 정부는 둔화남북로의 국제적 이미지에 맞추어 '둔화 야외 아트 갤러리'라는 공공 예술 설치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공모를 통해 제출된 백여 개의 작품 중 9개를 선정하여 둔화남북로 일대에 설치하였으며, 2km에 이르는 거리를 야외 아트 갤러리로 변모시켜 문화 예술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했습니다.
장웨이수이 기념 광장_타이베이시 신이구 충더가 267호 옆
이곳은 장웨이수이 기념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상 개인적인 비밀 장소에 가깝습니다. 공간은 그리 넓지 않으며 가로로 긴 의자 두 개와 '혁명 선열 장웨이수이 선생의 묘'라는 글씨가 붉게 새겨진 비석만이 놓여 있습니다. 비석 아래에는 장웨이수이의 유언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에는 대만인들에게 '각별히 단결하라'는 그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린썬 공원 토리이_타이베이시 중산구 난징동로 1단 88호
눈앞에 펼쳐진 푸른 녹음이 가득한 린썬 공원이 전후에 중화민국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국군 병사들이 거주했던 장소라는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욱이, 그보다 더 이전에는 '싼반차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제강점기 동안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었던 자리라는 점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리린추 고택_타이베이시 다퉁구 시닝북로 86항 4호
리린추 기념관은 당대의 음악가인 리린추가 거주하던 고택을 복원한 곳으로, 단순히 그의 친필 원고를 전시하고 업적을 알리는 장소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단 15분 만에 70~80년 전의 생활 분위기와 그 세밀한 모습에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철로국 베이단선(MRT 위안산역) 기숙사_타이베이시 다퉁구 주취안가 9항 13호
1901년 8월 25일, 타이베이와 단수이를 연결하는 지선철도인 베이단선이 개통되었습니다. 오늘날 MRT 위안산역 출구로 나가면 예전 구 베이단선 위안산역 기숙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 구 베이단선 위안산역 기숙사는 베이단선 철도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중산당(물소 군상)_타이베이시 중정구 옌핑남로 98호
1930년, 황투수이는 오랜 시간 동안 대만의 물소를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형 조각 작품을 제작하여 제국 전람회에 출품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피로가 쌓여 병을 앓게 되면서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37년, 황투수이의 아내인 랴오추구이는 그의 작품 <물소 군상>을 타이베이시 정부에 기증하였고, 이 작품은 그후 타이베이 공회당의 벽 한쪽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도시 남쪽 연대기(South Town Chronicle)_타이베이시 중정구 팅저우로 3단 230항 입구
예술가 청뤄한은 자신의 작품이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더욱 깊이 연결될 수 있도록 창작 과정에서 네 차례의 종이 공예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이 워크숍에는 135명 이상의 주민, 학생, 상인들이 참여하였으며,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도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반 대중의 삶과 지역 사회의 풍경 및 역사를 종이 공예 기술과 결합하여 금속 조각 예술로 표현한 라이트월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타이베이 식물원 석엽관(위르뱅 장 포리 및 하야타 분조 기념비)_타이베이시 중정구 난하이로 53호
푸르른 초록으로 가득한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924년에 세워진 '석엽관'입니다. '석엽'은 고온에서 말린 잎의 표본을 의미하는데, 이름만으로도 이 오래된 건물의 용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곳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표본관입니다.
보장암 역사 대단면_타이베이시 중정구 팅저우로 3단 230항 진입
1980년대에 보장암 촌락이 홍수 예방 및 물 친화 도시 프로젝트의 공원으로 편입되면서 전후 거주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주민들과 지역 사회의 다양한 노력 덕분에 2004년에는 마침내 이곳이 역사적인 건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점차 개방되면서 오늘날 '예술과 주거지의 공존'을 상징하는 '보장암 국제 예술촌'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인제요양원, 화평청초원_타이베이시 완화구 시위안로 2단 42호
인제요양원은 대만 최초의 정신 요양원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복지 구조 시스템을 더욱 현대적이고 완전하게 발전시킨 기관입니다. 전후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이곳은 지속적으로 정신 질환자들을 수용했지만, 2004년에 공원이 건설되면서 기존 운영하던 시설의 문을 닫고 신좡 분원으로 업무를 이전하여 운영했습니다.
효자호 육교(중화상가 효동 간판)_타이베이시 완화구 중화로와 카이펑가 입구(푸싱 초등학교 앞)
중화상가는 타이베이에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추억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문에서 시작해 소남문까지 이어지는 이 상가는 도로의 경계에 따라 각각 '충(忠), 효(孝), 인(仁), 애(愛), 신(信), 의(義), 화(和), 평(平)'이라는 여덟 가지 전통 덕목의 이름을 가진 건물로 구분됩니다. 줄지어 있는 이 여덟 동의 3층 콘크리트 건물에는 상점과 가정집이 입주해 있으며, 과거의 혼란을 해소하는 방안이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숙주 골목_타이베이시 완화구 창타이가 73항
뛰어난 수질을 갖고 있던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당시 정부의 주도 하에 재배하는 작물이 사탕수수와 화훼에서 숙주와 마죽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지금의 창타이가 73항 일대는 전성기 시절 집집마다 물을 길어 숙주를 길렀다고 말할 정도로 꽤 큰 규모의 '숙주 골목'을 형성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화강 재건 주택_타이베이시 완화구 허핑서로 3단 294호
1969년, 타이베이시 정부는 철거민들의 재정착을 위해 이 지역을 선정하고 화강교 건설과 함께 주택 재건축을 계획하여 첫 번째 정착지를 조성했습니다. 화강 재건 주택이 완공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건물의 외관은 그 당시처럼 밝지도 않고 다소 낡아 보이지만, 의외로 1970~1980년대 '옛 타이베이'의 생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어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멍자 복덕궁_타이베이시 완화구 창사가 2단 207호
당시 화물들은 제1 수문의 부두에서 하역되어 멍자(현재의 완화구) 지역의 가장 번화한 '고구마 시장'으로 운송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마을이 점차 형성되었고, '타이베이 제1 거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마을이 점점 더 성장하면서 이 지역에 정착한 이민자들이 지금의 시창가 119호 앞에 멍자 최초의 토지신궁을 세웠습니다.
나룻목 복덕궁_타이베이시 원산구 융안가 9호
저항할 수 없는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이곳에 살던 무자 지역의 선인들은 마지막으로 신앙에 희망을 걸고 자금을 모아 사원을 세우며 신의 가호를 기원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뱃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나룻목 복덕궁'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